요즘은 한 가지 일을 여러 AI 에이전트에 나눠 맡깁니다. 그런데 일하다 보니 이상한 비효율이 보였어요. A 에이전트와 쌓은 경험이 B 에이전트로는 전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. 같은 작업을 다른 에이전트와 다시 하려면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고, 한 번 겪은 실수를 다른 곳에서 또 반복했습니다.

“AI가 경험을 기록하고 다음에 재사용한다”는 아이디어(안드레 카파시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)를 접하면서 생각이 굳어졌습니다. 에이전트들이 각자 따로 노는 게 아니라, 하나의 공동 지식 저장소에 경험을 쌓고 서로 공유하면 어떨까? 요즘 이 “LLM이 굴리는 영속적 위키”라는 개념이 여기저기서 회자되는데, 저는 그걸 4월 초부터 옵시디언으로 직접 만들어 굴려왔습니다. 이 글은 개념 소개가 아니라, 두 달 반 넘게 실제로 운영한 결과입니다.

거창한 개인 지식관리 시스템을 만든 건 아니에요. 저에게 이 위키의 용도는 하나입니다 — 제가 운영하는 AI 에이전트들의 ‘지속적인 경험 축적소’.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마크다운 문서 135개가 쌓였습니다(주제 81·프로젝트 30 중심). 자동 관리나 cron 같은 건 없습니다. 일주일에 한 번쯤 ‘wiki’ 에이전트와 대화하며 손보는 게 전부예요.

왜 노션이 아니라 옵시디언인가

가장 중요한 조건은 **“AI 에이전트가 직접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”**였습니다. 그래서 답은 자연스럽게 정해졌어요.

  • 마크다운(플레인 텍스트) — AI가 읽고 쓰기에 가장 편한 형식입니다. 노션처럼 닫힌 DB가 아니라, 그냥 .md 파일이라 어떤 도구·에이전트든 바로 다룰 수 있습니다.
  • 로컬 + 내 소유 — 파일이 내 손에 있어야 AI가 자유롭게 접근하고, 데이터도 내가 통제합니다.
  • 시놀로지 NAS에 보관 — vault를 집 NAS 공유 폴더에 두고, 맥에서는 네트워크 드라이브로 마운트해 옵시디언으로 엽니다. 덕분에 여러 기기에서 같은 위키를 보고, AI 에이전트도 같은 저장소에 직접 접근합니다.

노션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, “사람이 보는 예쁜 노트”가 아니라 **“AI가 굴리는 지식 베이스”**가 목적이라 옵시디언(마크다운)이 맞았습니다.

어떻게 구성했나

구조는 단순하게 PARA식으로 나눴습니다 — 받은 것(Inbox), 출처(Sources), 주제(Topics), 프로젝트(Projects), 기록(Logs), 그리고 전체 색인(Index)·템플릿(Templates). 여기에 **문서를 어떻게 쓰고 분류할지 정한 규칙 파일(SCHEMA)**을 하나 둬서, 사람이든 AI든 같은 기준으로 정리하게 했습니다.

PARA식으로 나눈 옵시디언 vault 폴더 구조

핵심은 폴더가 아니라 **“누가 정리하느냐”**였습니다.

핵심 — 정리를 ‘wiki 에이전트’가 대신한다

솔직히 이걸 사람이 직접 정리했다면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들었을 겁니다. 쌓이는 메모를 읽고, 서로 엮고, 중복을 합치고, 분류하는 일은 끝이 없으니까요.

그래서 ‘wiki’라는 정리 전담 에이전트를 만들었습니다. 이 에이전트는:

  • 쌓이는 마크다운 파일들을 빠르게 읽고
  • 서로 연관을 지어 링크하고
  • 여러 문서에 공통으로 나오는 내용은 상위(주제) 문서로 승격시킵니다

여기서 ‘wiki 에이전트’는 따로 돌아가는 서버 프로그램이 아닙니다. LLM(저는 클로드를 씁니다)에 앞서 정한 정리 규칙(SCHEMA)을 ‘스킬’로 입힌 에이전트예요. 마크다운을 파싱하는 파이썬 스크립트를 짠 게 아니라, 에이전트가 파일을 직접 읽고 규칙대로 링크·승격·정리한 뒤 다시 파일로 저장합니다. 상시 백그라운드로 도는 것도, cron에 걸어둔 것도 아닙니다. 제가 일주일에 한 번쯤 “정리해줘”라고 부를 때만 실행돼요.

결국 “정리에 드는 시간”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. 메모는 그냥 던져두면 되고, 정돈은 에이전트가 합니다. 체감 효율이 정말 큽니다.

어떻게 쌓는가 — ‘대화’를 규칙대로 저장한다

한 가지 더, 이게 진짜 핵심입니다. 저는 에이전트와 길게 대화하거나 뭔가를 만들고 나면, 그 대화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정해진 규칙대로 위키에 저장합니다. 막 쌓으면 나중에 못 찾으니까, “어떻게 저장할지”를 미리 규칙(SCHEMA)으로 정해뒀어요.

규칙은 대략 이렇습니다.

  • 정해진 칸에 맞춰 적는다. 작업 기록은 자유서술이 아니라 늘 같은 틀입니다 — 한 일 / 결정한 것 / 안 하기로 한 것 / 다음에 할 일 / 고민할 것. 매번 같은 칸이라 나중에 어디를 봐야 할지가 분명합니다.
  • 결정은 따로 뗀다. 무언가를 정하면 날짜·결정·이유·대안을 결정 문서에 한 줄 남깁니다. (앞서 말한, 제일 값졌던 그 문서예요.)
  • 새 메모는 기존 문서와 양방향으로 잇는다. 메모 하나를 추가하면 끝이 아니라, 그게 관련된 기존 문서들에도 서로 링크를 겁니다. 카파시가 말한 “소스를 추가할 때 단순 색인이 아니라 기존 페이지 10~15개를 같이 갱신하고 교차 참조를 만든다”를, 규칙으로 박아둔 셈이죠.

이 ‘저장 규칙’이 있고 없고가 결정적입니다. 규칙 없이 막 던지면 그냥 메모 더미가 되지만, 틀에 맞춰 저장하고 서로 링크해두면 — 나중에 같은 주제를 다시 만났을 때 검색·재사용이 됩니다. 쌓을수록 가치가 붙는 건 양이 늘어서가 아니라, 예측 가능한 형식 + 교차 링크 덕분이에요. 그래서 정작 중요한 건 “AI가 정리한다”가 아니라 “어떤 규칙으로 정리하게 했나”였습니다.

걱정한 건 ‘AI가 위키를 못 버틴다’였는데, 진짜 문제는 달랐다

이런 구조를 말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우려가 **“LLM이 위키를 계속 유지할 수 있냐, 결국 스스로 망가뜨리지 않냐”**는 겁니다. 두 달 반 넘게 굴려본 제 결론은 의외였어요. 유지는 오히려 잘 됐습니다.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**‘내가 직접 자동으로 안 돌려서’**입니다. 상시 자동 정리를 걸어두지 않고 주 1회 제가 대화로만 손대니, 오히려 통제가 됐어요.

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— 파일이 쓸데없이 비대해지는 것. “잘 정리해 두라”고 맡겨두면 문서가 끝없이 부풀어서, 어떤 건 80~90KB까지 커졌습니다. 그래서 결정 기록 같은 핵심 문서는 달 단위로 쪼개고, 한 번씩 날 잡아 대청소를 합니다. 운영의 본질은 ‘model collapse 방어’가 아니라 **‘비만 관리’**였던 셈이에요.

가장 값진 건 ‘결정(decisions)’ 문서였다

두 달 반 써보니 제일 유효한 건 단연 ‘결정’ 문서입니다. 지금까지 90건 넘게 쌓였는데요.

일하다 보면 나도 에이전트도 잊습니다. “어, 이거 그때 왜 이렇게 정했지? 지금 보면 저게 더 좋아 보이는데” 하는 순간이 꽤 많아요. 그때 결정 사유를 열어보면 한 번에 정리됩니다. 과거의 나와 5분 만에 합의가 끝나는 셈이죠. 비슷한 상황이 다시 와도 과거의 판단을 빠르게 참고하니 결정이 훨씬 효율적이 됐습니다.

솔직한 함정 — AI가 다 해주니 정작 ‘내 머리’엔 안 쌓였다

반대로 예상 못 한 반전도 있었습니다. 저는 위키가 차곡차곡 쌓이면 제 머릿속 지식도 같이 좋아질 거라 기대했어요. 그런데 아니었습니다.

정리를 AI가 대신해주니, 정작 사람에게 남는 지식은 생각보다 적었습니다. 위키엔 보통 결론만 쌓이고,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·판단·시행착오는 “어차피 정리됐으니까” 하고 그냥 넘어가게 되더군요. 그나마 앞서 말한 ‘결정’ 문서가 이 빈틈을 메워줬습니다 — ‘왜’를 의도적으로 남기니, 결론만이 아니라 판단까지 다시 꺼내 쓸 수 있었으니까요. 그래도 내 지식이 느는 건 여전히 내 노력이 따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.

두 달 반 써보니 — 그래프 뷰의 진짜 쓸모

운영하면서 정작 옵시디언에서 제가 직접 손대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(정리는 에이전트가 하니까). 대신 제가 자주 쓰는 건 그래프 뷰예요.

  • 문서끼리 연결된 그물을 보면 잊고 있던 맥락이 금방 되살아납니다.
  • 서로 멀어 보이던 주제가 이어져 있는 걸 보며 새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됩니다.

“내가 정리하는 도구”가 아니라 **“AI가 정리해둔 걸 내가 내려다보며 생각하는 도구”**로 쓰는 셈입니다.

옵시디언 그래프 뷰 — 문서가 쌓일수록 노드와 연결이 함께 늘어난다. 하나하나가 쌓인 지식이고, 선이 그 연결이다.

마무리 — 누구에게 맞을까

여러 AI 에이전트·도구로 일하면서 지식이 흩어지고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게 고민이라면, 이런 “AI 공용 세컨드 브레인”은 분명 효율적입니다. 정리 시간이 사라지고, 무엇보다 ‘왜 그렇게 했는지’가 남는다는 것이 큽니다.

두 달 반 굴려본 입장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더하면 — 유지를 너무 자동화하려 들지 말 것(차라리 주 1회 손으로 보는 게 통제됩니다), 그리고 파일 비대화를 정기적으로 관리할 것. 마지막으로, “AI가 정리해주면 내가 저절로 똑똑해진다”는 건 환상입니다. 결론은 위키에 쌓여도, 사람의 성장은 결정 기록처럼 과정을 의도적으로 남기는 장치가 있어야 따라옵니다. 그 균형만 잡으면, 쌓일수록 발전하는 지식 베이스 하나를 갖게 됩니다.